페저주카 의 다양한 글쓰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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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저주카 • 2021-06-28 • 3 min read

(MFA과정) 비전공자 디자인대학원 포트폴리오 쓰는법

이참 포스팅에서는 비전공자가 주인 막막한 부분이자 어찌보면 디자인유학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포트폴리오 작성하는 법을 똑바로 제가 듣고 보고 했던 내의 경험 위주로 포스팅합니다.

1. 포트폴리오를 쓰는 목적

2. 포트폴리오의 흐름잡기

이건 사람마다 달라서 뭐라고 말씀드리긴 어렵고, 처음부터 이문 주제를 생각하지 마시고, 일단 작품을 요것조것 여러개 많이 해본 다음에 공통되는 부분으로 잡아서 흐름을 나중에 편집을 해서 맞추는 게 좋습니다. 솔직히, 말로만 하면 쉽게 들리는데, 본인 스스로하긴 쉽지 않고 객관성도 풍부히 떨어질 행운 있으니 유학미술 전문학원에서 상담을 받으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저같은 경우는 대주제가 “인간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고찰과 해결책”이 주제였던 거 같습니다. (1) 인간이 인식하는 행위의 한계, 그것의 아름다움 - 디지털 필름 콜라주 및 오브제 2건 (2) 인간의 한계, 디지털문화, 그것으로 생겨나는 문제인식 - 순수미술 회화 2편 (시리즈로) (3) 그것을 극복하려는 근로역작 및 돌파의 방술 흠념 - 디바이스 컨셉디자인 및 기업 다니면서 쓴 인터랙션 디자인 특허 2건 이렇게 되더군요. 내가 저런 주제에 심도 관심이 있구나 하는 것은 새발 작품을 대개 하고 나서야 깨달은 사실들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멋지게 (?) 논점 잡으려고 과정 마시고, 관심있는걸로 작품을 끽휴 본 다음에 저런 테마로 꾸미시는 게 좋습니다. 순서 잡는 원칙으로는 내의 2가지 추천드립니다: (1) “잘한 것으로 하수 –> 잠시 용서가 되는 것들 넣기 –> 극진지두 빵! 잘한거” (2) “잘한 것으로 시작–> 실험적인거–> 기허 실용적인, 생업 상에서 했던 것들로 끝을 낸다” (저는 잘한게 몇 가장귀 없어서 익금 트랙으로 갔죠)

3. 포트폴리오 작업하기

아니 저걸 늘 대개 했냐구요? 저도 주말마다 피곤해 죽겠는데 어떻게 했나 모르겠습니다. 근데 돌아보면 당장 “아… ~했어야했어!” 라는 것들이 몇가지 있어서, 그걸 추천드려요. (1) 시간을 낸다. 쥐어 짜서 낸다. 다작은 필수. 저는 IT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이었습니다. 당연히 시간이 사뭇 없죠… 일단 학원에 돈을 매우 내놨습니다. 비발 아까워서라도 압구정까지 갈 생명 있도록요. 뿐만 아니라 나서 어쨌든 쥐어 짰습니다. 강남미술유학 뇌력 몇달간은 평일에 월수금 갔습니다. 일이 별양 없을때인데도 죽을거같더군요. 따라서 주말에만 등록해서 계속해서 6개월~1년 나간 무겁게 맥북프로 하나 들고 학원 다니면서 물건 미친듯이 검색해 보고, 질문도 엄청 하고, 상량 많이 까여서 언제는 2주 내리내리 아이디어만 찾고…. 과연 뻘짓 많이했죠. 도리어 그렇게라도 커피 들이붓고 시간을 내니 마지막에 포트폴리오를 일껏 할 수준은 되었습니다. 몹시 피곤하고 몸아프다면서 (그땐 진정 죽는줄 알았었는데…ㅎㅎ) 중간에 학원도 짐짓 참으로 빠지고 게을렀던게 나중가서는 후회가 되더군요. 어려이 약 7건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나중에 돌아보면 쓸만한 작품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저보다 더 많은 작품을 하시기를 추천합니다. (2) 학원은 사뭇 다녀야함. 꾸준히… 직장인이시고, 내지 학생이시고 비전공자이시면 그대로 형창 추천합니다. 저는 검색해서 맨 해골 나오고, 으뜸 체장 하고 제일 큰거같은데를 골라서 다녔어요. (압구정소재 아트필. 저는 학부도 유학나왔는데, SAT학원 다닐때도 그렇고 압구정에 있는 학원들은 진짜로 퀄리티높고 괜찮은 곳이 많습니다. 비싸서 그렇지…ㅎㅎ) 그러면서 본 게,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이 대단히 된다는겁니다. 이름모를 고등학생들 미국에 미대 준비하고 싶어했다가 어느날부터 안보이다 금방 두고, 홍대에서 조소 전공하여 판교에서 밥그릇 다니던사람 1개월만에 그만뒀고, 아무개 계원예고 미술 나온 학도 표현이면 됐지 추량 강조하는게 맘에 안든다며 그만뒀고… 제가 약 1년 기업체 기간 다니면서 본 것만 임계 5~6명은 됩니다. 비전공자일수록 학원의 도움은 필수적이므로, 간혹 간섭같기도 하고, 이게 맞나 싶어도 어디라도 등록해서 바지런스레 다니면서 소작 만들고 남들이 하는 것도 보고 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게다가, 하모 작품들은 집에 신문지깔아놓고 하기는 오죽이나 벅찹니다. 스프레이도 뿌려야 하고, 재료도 갈아서 써야 하고… 노역 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학원다니면 누가 버려놓은 준비물도 주워다가 쓸 데도 있고, 작품사진 찍을 처소 외따로 안알아봐도 되고, 좋은 점이 많죠. 돈을 너무 안들이고 비전공자가 부지런히 준비해서 좋은 학교를 합격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과감히 투자하시길 추천드립니다.  Read →

페저주카 • 2021-06-28 • 3 min read

웹툰원작 넷플릭스 오리지널 <스위트홈> 내용 결말 하루만에 정주행...

하루만에 끝내버린 넷플릭스 신작 스위트홈 속내 배랑뱅이 필경 솔직후기(스포있습니다.)

웹툰을 원작으로 어떤 넷플릭스 신작 오리지널 드라마 스위트홈은 국내순위 뿐만 아니라 태국과 필리핀, 대만,싱가포르등등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에서도 석차 탑에 들었다고 합니다. 특히, 스위트홈 드라마의 처지 성회 30억이라는 제작비를 들여 촬영되었다고 하는데요! 킹덤이 성당 제작비20억이라는데, 10억이이나 훨씬 들어간 드라마라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정말 킹덤 보다 세트장,CG가 별로였던 느낌이 들어서 그런것 같아요. 특히, 괴물이 저렇게 허접한곳을 막았다고 못들어오는것도 말이 안된다는생각이 가장 우선 들었습니다. 그래도 깜짝 놀라는 장면들이나 다양한 괴물 더구나 배우들의 연기에 끌려 1편, 2편을 보다보니 그렁저렁 시즌1을 끝내버렸더라구요! 등장인물로는 송강, 이진욱, 이시영, 김갑수, 김상호 등등 매력적인 배우분들이 참으로 출연하는데, 웹툰 원작과의 갑 큰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군대가 나오는 점, 또한 서이경(이시영)은 웹툰에서는 없는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혹시 군대를 내용에 추가하면서 엮어서 풀어내는 인물이라 서이경역을 추기 한것 같습니다. 웹툰은 총 141화로 완결이 난 작품으로 볼 요행 있는 링크 마지막에 첨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드라마 스위트홈 내용결말 , 웹툰 스위트홈 결말을 따로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스포 있습니다.)

<넷플릭스 극="" 스위트홈="" 기의="" 파생="" 결말포함="">

**스포를 원하지 않으실 상태 가운데 <결말>전까지만 보시고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주연 현수(송강)는 학교에서 받은 상처로 인해 방 밖을 안나가는 폐인생활을 하고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가족들여행을 떠난 가족들이 사고로 사망하고 혼로남겨진 현수는 그린홈으로 이사를 가게됩니다. 살아갈 의지가 다 없어져버린 현수는 자살을 하려고 날짜까지 적어놓습니다. 그럼에도 급박히 나타난 괴물로 인해 혼란에 빠진 와중에 진통 아이들을 구해주게되고 사람들과 생존하여 탈출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알수없는 바이러스에 인해 대통령마저 방송을 하다 괴물로 변하고, 이익 바이러스는 알고 보니 인간의 욕망이 자긍 스스로를 괴물로 만들어 내는것이였는데요! 사람들은 차츰차츰 공포에 빠지게 되고 서로를 의심하며 혼란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괴물로 가기전 바이러스 감염의 증상은 쏟아지는 코피,  앞서 현수의 괴물화를 눈치 챈 사람들은 현수를 어쩔수 궁핍히 이용하고 현수는 사람들을 지키기위해 장상 괴물들이 있는곳으로 단신 작업을 하러 나가게 됩니다. 시고로 현수에게 고마움과 미얀함을 느끼는 그럼에도 언젠가 괴물화가 될지 걱정도 되는 사람들의 이기적인 이중적인 모습으로 현수는 스스로를 고립하게 됩니다.

<넷플리스 스위트홈="" 결말="">

하지만, 현수는 특수감염이 되었음에도 내면에 있는 괴물의 꼬임에도 넘어가지 않고 버티게 되는데, 이와중에 군인에게 잡혀간 서이경(이시영)은 현수의 정보를 넘기고 현수를 넘기는 대가로 살아서 새로 아파트로 돌아가는데, 마침 모자란 식품과 의약품을 구하기 위해 나가던 현수와 상욱(이진욱)이 죽을위기에 처하고 그들을 구한채 아파트로 돌아갑니다. 반면 괴물에 의해 사람은 또는 죽게되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아파트로 도망온 새로운 생존자의 무전기를 통해 이들의 위치를 알아챈 생존자이자 악당들이 아파트를 점령하며 사람들을 협박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모 가방을 흥분 위해 누군가를 찾는것으로 보였는데, 종당 그들을 막지 못한 현수는 반괴물화된다는 사실만 들킨채 그들에게 끌려갑니다. 죽을 위기에 처해있던 현수, 제때제때 악당의 사고력 옆에 있던 오른팔 격의 정의명(김성철)이 우두머리를 죽이고 현수를 구하는데, 알고보니 는 현수와 함께 감염자로 괴물화되는 사람이였던 것이였습니다. 정의명은 현수와 함께하며 현수를 사람들과 떼어놓으려하고 결국엔 정의명은 남아있는 사람을 죽이게되고 그에 화가난 현수는 괴물에게 잠식된채 그를 쓰러트리지만 사람들까지 공격하려 하는데, 지금 괴물에게 잠식된 현수를 한두식(김상호)이 감싸안으며 진정시키고 죽고 맙니다. 제정신을 차리지만 충격을 받은 현수, 이래 무장한 군대가 들이 닥치고 현수는 군의 말대로 군을 향해 나가고,이은혁은 본인이 괴물화 된다는 사실을 알고 아파트 안에 남고 결정 아파트주민 생존자들은 안길섭(김갑수)이 발견한 통로를 따라 도망을 칩니다. 오히려 해결책 끝에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군부대! 군인들과 나란히 안전캠프로 떠나는 주민들 오히려 서이경(이시영)은 군에 할일이 있다며 그들과 작별인사를 하며 장면이 바뀌고, 현수가 눈을 뜨고 그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얼른 편상욱,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에는 있던 화상자국이 없습니다.(이를 봐서 괴물화 되었다는것을 알 운명 있습니다.) 이렇게 드라마는 시즌2를 만들것같은 뉘앙스를 남기며 끝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시즌2의 이야기는 정확하게 정해진바가 없다고 하네요.

<웹툰 스위트홈="" 결말="">

아파트에서 살아남은 몇명은 산으로 가고 현수와 지수 그리고 은혀,상욱만이 남습니다. 그럼에무료웹툰도 현수의 반괴물화에도 물러서지 않는 강력한 괴물이 나타나고 나중 현수는 괴물화를 받아들이며 의식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상태에서 괴물을 쓰러트리려 합니다. 현수는 내나 기사모습의괴물로 완벽하게 바뀌고 싸우던 괴물을 쓰러뜨리지만 이후, 남은 동료들 마저 공격하고 맙니다.이를 총체 지켜보던 이은혁은 자신의 욕망은 사람들을 지키는 것이라하며 괴물화를 받아들이고 공격하는 현수를 막은채  이상한 막에 가둬버립니다. 이렇게 현수와 은혁에 도움으로 무사히 탈출한 지수와 상욱은 그들에게 고마워하며 눈물을 흘리고, 현수와 은혁이 있던 자리에는 알이 한가지 나타는데, 사실은 괴물이 알이 되고 그알에서 사람이 태어나는 욕망과 감정이 없는 신인류로 진화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현수는 감정없는 인간으로 나오지만 지수가 작곡한 노래이자 본인이 타이틀을 정한 스위트홈이라는 노래가 담긴 핸드폰을 줍고 눈물을 흘리게 되고 종국 마지막은 감정을 찾은것으로 보이는 현수가 지수를 찾아가 서관 안으면서 끝납니다. ▼▼완결 스위트홈 무료다시 거례 ▼▼ 웹툰 스위트홈 완결보기 https://douknowaboutkorea.tistory.com/47 https://douknowaboutkorea.tistory.com/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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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저주카 • 2021-06-27 • Less than a minute read

유상철 죽음 축구 선수, 감독 별세.. 그는 누구였나

유상철 죽음 축구 선수, 감독 별세.. 그는 누구였나

안녕하세요,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7일 향년 5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2019년 11월 췌장암 두소지재 판정을 받고 1년 7개월간을 투병했습니다. 췌장암은 초기 증상이 거의 없어 ’침묵의 살인자’라고도 불리며, 한참 진행된 이후에야 복통과 함께 황달이나 소화불량, 식욕부진, 피로감 등 증상이 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상철 그는 누구였나? 유상철 감독은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으로 한국 축구에 큰 족적을 남겼으며, 한국과 일본 등에서 활약했습니다. 또 최근 항암치료를 받기 이전에는 인천 유나이티드의 감독으로 재직했습니다. 축구선수 유상철은 어떤 사람이었나? 유상철 감독은 1994년 울산 현대에 입단하면서 생화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일본의 요코하마, 가시와 레이솔 등에서 뛰었고, 2006년 울산 현대에서 전문가 생활을 마감했습니다. 환역 프로에서는 142경기토토에서 37골을 올렸습니다. 그는 선수 연대 한국 역사상 최고 멀티플레이어 복판 하나로 꼽혔습니다. 수비에서 미드필더, 공격까지 모든 포지션을 맡을 생령 있는 능력을 갖췄기 때문입니다. 그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대표팀에 선발돼 조별리그 내종 벨기에전에서 동점 골을 뽑아냈고, 이래 2002년 한일 월 드컵에서는 첫 경기인 폴란드전에서 골을 뽑아내며 한국을 4강에 올린 주역이 되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홍명보와 함께 월드컵 공식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대표팀에서는 124회 출장, 18골의 기록을 남겼습니다. 감독 유상철은 어떤 사람이었나? 그는 은퇴 이후 감독으로도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춘천기계공고 축구부 창단 감독으로 부임한 이래 매치 시티즌, 전남 드래곤즈,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을 맡으며 지도자를 지냈습니다. 2006년부터 KBS 축구 예능 ‘날아라 슛돌이’에서 아이들을 지도한 경력도 있습니다. 당시 그는 지금은 국가대표 선수가 된 이강인을 지도하기도 했던 감독 유상철은 ’투지’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국가대표팀과 함께 나간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 멕시코전에서 전반전에 코뼈가 부러졌는데도 풀타임을 소화하고 경기 종료 직전 헤딩으로 결승골까지 넣어 2-1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이후 히딩크 감독은 자서전과 인터뷰에서 유상철의 출전을 만류했으나, 그가 끝까지 고집했다며 그를 ’자신의 말을 안 들었던 선수’라고 회고했습니다. 환자 유상철 어떤 사람이었나? 그가 가진 투지는 투병 생활에서도 드러났습니다. 그는 췌장암 판결 이후에도 지휘봉을 놓지 않고 인천 유나이티드를 지도하며 강등 위기였던 팀을 1부 리그에 잔류시켰습니다. 지휘봉을 내려놓은 후에도 힘겨운 항암치료를 견디면서도 방송, 유튜브 등에 출연해 팬들과 소통을 이어갔습니다. 자신이 이끌던 인천이 또다시 강등 위기에 놓이자 감독직 복귀에 의지를 보이는 등 인천과 축구에 대한 변함 없는 열정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유상철 추모에 대한 행열 이야기들 국제축구연맹(FIFA)은 이날 오후 월드컵 공식 계정에 유 전 감독의 선수 시절 국가대표 경기 출전 사진과 함께 ”한 번 월드컵 영웅은 언제나 월드컵 영웅”이라며 추모 메시지를 올렸다. 이어 대한축구협회(KFA)는 2002년 월드컵 당시 유상철 감독의 선수 시절 모습이 담긴 사진과 함께 ”당신과 함께한 그 날의 함성과 영광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추모 메시지를 올렸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소속 손흥민 선수는 자신의 SNS를 통해 KFA의 유상철 감독 애도 게시물을 공유하며 고인을 애도했다. 유상철이 어릴 적 지도했던 스페인 발렌시아 소속의 이강인 선수 역시 8일 SNS를 통해 유상철 감독을 애도하며 ”그때의 저는 아주 어린 나이였지만 축구에서 있어서 만큼은 제게 항상 진지하고 깊이 있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때의 가르침이 지금까지 제가 걸어온 축구 인생의 의미 있는 첫걸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게 베푸셨던 드높은 은혜에 보답해드리기도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나셔서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라고 말했다. 현역 시절 유상철 감독과 함께 뛰었던 동료들도 그를 추모했다.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주장이었던 홍명보 울산 감독은 한 매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 이별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힘들다”고 심경을 나타냈다. 김병지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인스타그램에 “지난 30년간 동료이자 후배인 유 전 감독의 영면이 안타깝다. 그의 한국 축구를 위한 헌신과 노력에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라고 애도했다. 이영표 해설위원 역시 유상철 감독을 추모하는 게시물을 인스타그램에 게재했다. 이동국 선수도 SNS에 “같은 시대에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편히 쉬세요”라고 애도했다. 그가 활약하고 지도했던 구단들에서도 애도 행렬이 이어졌다. 인천 구단은 SNS 계정에 “당신의 열정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편히 쉬소서”라고 애도의 메시지를 남겼다. 일본 요코하마 구단 역시 공식 SNS를 통해 ”유상철은 4시즌 리그 80경기 30골을 기록하며 리그 2연패에 공헌했다”며 ”지난해 홈 개막전에서 닛산 스타디움에서 승리했을 때 ’여러분과 다시 만나고 싶다’고 했던 약속을 실현하지 못해 유감이다. 명복을 빈다”고 메시지를 남겼다. 일본 매체 ’풋볼존’은 ”유상철은 일본에서도 전설이다”며 ”J리그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유상철과 너무 빠른 이별이 됐지만, 투지 넘치는 플레이는 수많은 일본 축구팬의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다”며 고인을 조명했다. 축구선수 유상철, 축구감독 유상철 추모합니다. 오랫동안 기억하겠습니다.  Rea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