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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5 • 4 min read

명문 구단의 야구선수에서 잔혹한 살인자가 된 '이호성'에 관한 이야기

어렸을 상대방 나는 ‘웃대(웃긴 대학)’을 근면히 하는 웃대 유저였다. 거기서 “나랑께 글 하 열어보랑께”, “오오미 지리것소” 등의 말을 아모 썼었는데 자기 때는 이윤 말의 의미를 모르고 썼었다. 반대로 나이를 먹고 홀언 수지 드립이 생각나면서 시초를 찾아보니 KBO의 명문구단 해태와 기아의 야구선수이자 살인자인 이호성을 두고 만들어진 지역드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90년대 최강팀 해태의 4번 타자였던 이호성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목차

1. 야구선수 이호성

이호성은 연세대 졸업 이하 1990년 고향팀 해태 타이거즈의 1차 지명을 받아 프로에 입단했다. 입회 첫 해인 루키 시즌과 이듬해인 1991년, 2년 연속으로 KBO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을 수상하며 혜성 같은 데뷔를 알리게 되었고 90년대에 차지한 해태의 한국시리즈 4번의 우승을 몽땅 견인한 만치 수준급의 실력을 갖춘 야구선수였다. 게다 초빙 천하장사인 씨름선수 이만기를 팔씨름에서 이긴 전적도 있으며 500원 짜리 동전을 두 손가락으로 접거나 엄지로 못을 눌러 박는 정도의 완력이 있는 힘이 장사였다. 유도 재주 게다가 엄청났기 그러니까 어렸을 과녁 유도를 시작하자마자 전국대회 우승자를 압도적으로 이겼다고 한다. 더욱이 힘만 장사가 아닌 주루 실력도 좋았기 그러니까 91년 시즌에 20-20 클럽에 가입하는 등 호타준 족의 면모도 보이는 뛰어난 선수로 시련 받았었다.

2. 선수 은퇴 이후 사업과 실패

2001년 야구계에서 은퇴한 이호성은 자신의 이름을 딴 ‘호성웨딩홀’을 운영하며 심도 나가는 사업가가 되어 있었다. 실지 같은 팀 속내의 장성호를 비롯한 여러 기아 타이거즈 선수들이 수지 곳에서 결혼식을 치렀고 약 3년여 사이 사업을 하면서 지방에 2호점, 3호점까지 내면서 과제 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2005년에 난데없이 약 100억 원 규모의 내실 스크린 경마장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110억 이상의 부도를 내면서 실패하게 된다. 그러면서 전라남도 순천시에 6층 짜리 오피스텔 건물을 짓고 분양 사업을 기도 했는데, 이는 한국마사회에 ‘경마장 장외발매소’ 공모 공고에 신청하여 허가까지 따 놓은 상태였다. 이렇게 은퇴 후 그의 경영 인생은 순탄하게 흘러만 가는 줄 알았으나 순천 시민단체들이 교육도시 순천에 사행성 업소를 짓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대대적으로 반대하고 나섰고 그의 사업허가는 건듯 취소되고 말았다. 여기서 부터 그의 기거 내리막은 시작되었다.

3. 이호성의 범행

2008년 2월 15일, 이호성의 내연녀인 김모 씨는 은행에 예치되어 있던 정기 예금 1억 7000만 원을 현금으로 인출하게 된다.

그리고 은행에서 나와 흰빛 SM5 조수석에 타고 떠났던 것이 CCTV에 포착되었다. 또한 이틀 뒤꽁무니 김모 씨의 버금 딸(19), 셋째 딸(13)이 귀가 하였으며, 18일 이호성의 내연녀인 김모 씨는 퇴근을 하면서 횟집 종업원들에게 “며칠 여행을 다녀오겠다” 라는 말을 남기고는 연락이 두절되었다. 정형 과정에서 갑 딸인 정모 씨(20)를 비롯한 아녀자 세 명도 18일스포츠 이래 이호성과 같이 연락이 두절되었다.

그리고 오후 4~5시 쯤 한복판 마포구 창전동 김모 교사 아파트에 김씨 소유의 SM5 승용차를 주차하는 남성이 목격되었으며, 이호성은 마포구에 있는 김모 씨의 아파트에서 김모 씨의 일가족을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 후에 국과수의 수토 종료 김모 씨의 둘째 딸, 셋째 딸은 야민 압박 등에 의한 질식사로 밝혀졌다.

그리고 이날 오후 9시 14분 ~ 16분 거리 CCTV에 찍힌 영상에는 경계 남성이 카트를 끌고 김모 씨의 아파트를 다섯 차제 극처 드나들면서 대형 가방을 실어나갔다. 이날 밤 11시 ~ 12시 가운데 실종자 김모 씨와 그녀의 딸이 통화한 기록이 발견되었고 밤 12시에는 종로 일대에서 큰 딸과의 끝 통화가 기록되었다. 국과수 사즐 변제 큰 딸은 둔기에 의한 두개골 골절 및 뇌출혈로 인한 상계 손상으로 사망한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다음 일일 식전바람 4시 새중간 둔기로 살해된 제일 딸의 휴대전화가 전남 화순의 벽 기지국에서 잡히게 되고 호남고속도로 상행선 장성나들목 구간에 있는 자동판독기의 CCTV에서 김모 씨의 백색 SM5 승용차가 잡혔다.

더구나 잔야 9시 ~ 11시 촌수 이호성의 의뢰를 받은 인부들이 화순군에서 아빠 산소에 표지석을 세워야 한다는 말을 듣고는 구덩이를 철회 시작했고, 여기에 실종된 김모 혈통 일가족이 암매장되었다. 그쯤 공개수배로 전환된 몇 희월 만인 3월 10일 오후, 반포대교에서 400미터 떨어진 한강 경계 가운데에서 이호성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처음에는 정일 미상이었으나 지문감식을 통해 이호성임을 확인했다. 투신자살로 추정되며 국과수는 이호성의 사세 원인을 익사로 발표하게 된다.

그때 이호성의 시신을 옮긴 이송요원의 즉시 증언에 의하면 결단코 한이 맺힌 듯한 얼굴이었다고 한다.

4. 사건의 파장

수익 사건으로 기존의 이호성이 자신의 이름을 딴 호성 웨딩문화원은 예약자가 급감하는 경영난을 겪기 시작했다. 오래도록 전 부터 경영 실패를 겪은 이호성은 호성 웨딩문화원을 매각한 상태에서 아무 관계가 없지만 치아 의제 이후로 나쁜 이름의 이미지가 들러 붙게 되어 버린 것이다.

더욱이 프로야구 선수의 인간관계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오갔으며 국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호성이 死마리 치킨’, ‘나랑께 글 수유간 열어보랑께’, ‘오오미 지리것소’ 등의 일명 ‘호성드립’이 탄생하게 되었고 일베를 비롯한 극우 사이트에서는 지역감정을 조장할 때는 소요 드립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이호성의 범행 아래가지 새중간 1억 7천만 원을 이호성이 가로챘지만 득 한복판 7천만 원의 행방은 지금도 묘연한 상태이다. 또 이호성의 범행 물종 역 확실하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이호성의 채무 관계가 복잡하긴 했지만 1억 7천만 가망성 가지고는 이호성의 채무를 해결하진 못 여름 그렇게 채무 그렇게 범행을 저질렀다고는 예시 어렵다는 주장이 다수이다.

자세한 이야기의 내용은 위의 영상을 참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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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 by: 페저주카
Category: sports